챕터 6
“1971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차트에는 이념적 의도가 없습니다. 지난 세기의 경제 데이터를 펼쳐보면, 그 패턴은 너무나 명확하고 확실하여 이를 무시하려면 의도적으로 눈을 감아야 합니다. 1970년대 초반, 세계 경제의 궤적을 근본적으로 바꾼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달러가 기축통화 역할을 했기에 미국에서 데이터가 가장 선명하게 나타나지만, 그 충격파는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 미쳤습니다. 임금, 불평등, 저축, 부채, 생활비 등 중요한 모든 지표가 충격적일 만큼 명확하게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1971년 이전에는 노동 생산성과 보상이 나란히 움직였습니다. 노동자들이 더 나은 도구, 더 나은 훈련, 더 나은 공정을 통해 효율성을 높일수록 임금도 비례하여 올랐습니다. 이것은 자선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불완전하더라도 실제 가치 창출을 반영하는 통화 시스템의 자연스러운 결과였습니다. 더 많이 생산하는 노동자는 더 많이 벌었습니다. 물이 차오르면 모든 배가 떠오릅니다.
1971년 이후, 두 선은 숨 막힐 듯한 속도로 벌어졌습니다. 기술의 끊임없는 발전으로 생산성은 계속 올랐습니다. 그러나 임금은 정체되었습니다. 효율성 증가에서 나온 이득, 더 큰 생산량으로 이어진 인간의 모든 노력에서 나온 이득은 그것을 만들어낸 노동자가 아닌 금융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새로 찍어낸 돈은 위로 흘러 주가와 부동산 가치를 부풀렸고, 실제로 부를 창출한 노동자들은 해마다 구매력이 떨어지는 통화로 임금을 받았습니다.
소득 불평등 데이터는 극명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미국은 데이터가 가장 세분화되어 있어 가장 명확한 사례를 제공하지만, 이 패턴은 산업화된 세계 전반에서 반복되었습니다. 대공황 이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초고액 부자들의 소득 집중도가 낮아졌습니다. 중산층이 확대되었습니다. 하위 90%에게 돌아가는 국민소득 비중이 수십 년에 걸쳐 꾸준히 늘었습니다. 사회는 경제적으로 더 공평해지고 있었습니다. 재분배를 통해서가 아니라, 폭넓게 공유된 성장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러다 1971년이 되었고, 그 추세는 마치 칼로 자른 듯 역전되었습니다. 상위 1%의 국민소득 비중이 오르기 시작했고, 하위 90%의 비중은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상위 소득자들, 즉 95번째 백분위수에 속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소득이 늘었습니다. 그러나 중간 및 하위 소득자들의 실질 소득 증가는 멈춰버렸습니다. 열심히 일해도 돌아오는 것이 줄었습니다. 고용주에 대한 충성심은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디트로이트에서 뒤셀도르프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중산층을 지탱해온 사회 계약, 즉 열심히 일하고 현명하게 저축하면 번영할 것이라는 약속은 조용히 무효화되었습니다.
통화 가치 하락의 해로운 영향은 무작위로 퍼지지 않습니다. 이미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가장 무겁게 내리눌러, 인종과 성별을 따라 이미 존재하던 사회적 균열을 더욱 벌려놓습니다. 증거가 가장 광범위하게 기록된 미국의 인종별 소득 불평등 데이터를 살펴보십시오. 제2차 세계대전 종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흑인과 백인의 평균 소득 격차는 좁혀지고 있었습니다. 충분히 빠르지는 않았고, 충분히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실질적인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71년경 그 진전은 멈추었습니다. 수렴이 중단되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좁혀지던 격차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 이후 어떤 정책 개입에도 꿈쩍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사한 역학은 경제적 소외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나타났습니다. 호주의 원주민, 유럽의 이민자 공동체, 인도의 하층 카스트가 그러합니다. 통화 가치 하락은 불평등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다만 불평등을 그 자리에 고착시킵니다.
성별 차원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1971년 이전에는 한 사람의 소득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 중 한 명이 일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가정을 꾸리고, 지역 사회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1971년 이후 실질 임금이 정체되고 생활비가 오르면서 이러한 방식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경제적으로 불가능해졌습니다. 여성들은 단순히 노동 시장으로 “해방”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징집된 것이었습니다. 맞벌이 가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영국까지, 일본에서 브라질까지, 나라들은 거의 하룻밤 사이에 맞벌이 경제가 되었고, 그 결과는 가족 생활, 자녀 양육, 사회적 결속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1971년 이후 생활비 상승은 완만한 경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벽입니다. 이 터무니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데이터 하나를 생각해 보십시오. 캠벨 토마토 수프 한 캔입니다. 거의 백 년 동안,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세계 대공황, 그리고 수많은 경기 침체를 거치면서도 캠벨 수프 한 캔의 가격은 약 10센트로 놀랍도록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부터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그 똑같은 캔은 1달러가 넘습니다. 수프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레시피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캔 크기도 그대로입니다. 변한 것은 돈이었습니다.
모든 나라에는 이 이야기의 자국 버전이 있습니다. 영국의 우유 한 파인트, 독일의 빵 한 덩이, 브라질의 쌀 1킬로그램입니다. 제품은 그대로입니다. 측정 도구가 계속 줄어들기 때문에 가격이 오릅니다.
주택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만 그 인간적 결과는 훨씬 더 처참합니다. 1971년 이전에는 거의 모든 산업 국가의 젊은 노동자가 몇 년만 저축하면 집을 살 수 있었습니다. 중간 주택 가격은 중간 가구 소득의 대략 2~3배였습니다. 오늘날 그 비율은 뉴욕에서 런던, 시드니에서 밴쿠버, 오클랜드에서 뮌헨에 이르는 도시에서 8배, 10배, 심지어 15배까지 벌어졌습니다. 한 세대 전체가 내 집 마련에서 밀려났습니다. 그들이 부모보다 게으르거나 재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임금이 표시되는 통화는 체계적으로 가치가 깎였고, 그들이 사야 할 자산은 체계적으로 부풀려졌기 때문입니다.
석유, 식량, 교육, 의료 등 모든 필수 비용이 같은 궤적을 따랐습니다. 상품과 서비스의 전반적인 비용을 측정하는 소비자물가지수는 1971년 이후 끊임없이 올랐으며, 이는 수요와 공급의 기본 원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패턴입니다. 이 모든 부문의 공통 분모는 탐욕도, 세계화도, 기술도 아닙니다. 그것은 돈입니다. 수조 단위의 새로 만들어진 통화를 경제에 쏟아부으면, 그것이 달러든, 유로든, 파운드든, 엔이든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닙니다. 이것은 산수입니다.